4·7 재보궐선거 이후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청년이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일찌감치 청년 표심을 자극하는 공약도 쏟아지고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들은 청년수당과 주거지원,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청년지원 공약을 내세웠다. 청년의 참여 보장도 정치권의 공약이었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은 청년 공천 확대를 내세워 표심을 공략했다. 이들은 약속을 지켰을까. 청년지원정책은 청년의 삶을 변화시켰을까.
■청년 공약 ‘흐지부지’
청년드림수당은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청년지원정책 가운데 하나다. 만19~34세 광주거주 미취업청년(중위소득 150% 이내)에게 매월 50만원씩 5개월, 최대 250만원을 지급한다. 2018년 시행 첫해 1100명이 드림수당을 받았다. 타 지자체의 청년수당과 차별성은 없지만, 지역 내 저소득·불안정 노동 종사자에게 소득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첫 사업 시행 이후 광주시는 청년드림수당사업을 돌연 중단했다. 2019년부터 고용노동부가 시행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제도와 사업 대상과 취지가 겹친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취업준비생에게 매달 50만원씩 최대 6개월간 지급하는 제도다.
광주시의 사업 중단 사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애초 고용노동부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지자체의 청년수당과 지원대상을 다르게 설계했다. ‘졸업한 지 2년이 경과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자체의 청년수당과 달리 고용노동부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졸업 2년 이내 청년을 지원 대상으로 정했다. 지원대상이 겹친 지자체들은 청년수당의 지원자격 기준을 변경해 사업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광주시는 왜 청년드림수당을 폐지했을까. 당시 광주시는 청년드림수당사업을 민간위탁 방식으로 추진했는데 사업 초기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위탁사업자 선정과 세부사업 계획을 세우기 전 지원자 모집광고를 하는 등 사전 홍보에 치중했다. 이를 두고 지역 청년단체는 “청년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광주시의 졸속행정을 비판하고 나섰고, 이후 청년단체와 광주시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당시 시민사회에서는 사업 수혜 당사자인 청년과 갈등을 빚자 광주시에서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19 대책, 청년 배제
이후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청년드림수당사업 시행 요구가 이어지자 광주시는 2020년 4월 사업 대상자를 변경하고 청년드림수당사업을 재개했다. 추주희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는 “드림수당이 재개된 직접적인 계기는 시민제안 공모사업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가 분명하다”며 “공모 제안은 일반 시민이 단년도 사업으로 제안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청년정책의 중장기적 비전과의 연계성 속에서 시행되기 어렵다”고 밝혔다(지역 청년정책의 전개과정과 이를 둘러싼 쟁점과 과제, 광주 ‘청년드림사업’을 중심으로).
최근에도 광주시는 올해 청년지원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청년 홀대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시는 당초 올해 청년 예산을 지난해 예산보다 151억원 적은 307억원으로 책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청년지원사업 확대가 필요한 시기에 되레 예산을 줄였다는 비판이다. 이후 광주시는 청년예산을 증액하고 후속 조치로 ‘청년희망플러스’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는 5월 14일 성명을 내고 “6대 분야 15개 (청년)지원사업 중 코로나19로 인해 수립된 사업은 코로나19 피해조사 단 한개뿐”이라며 “그나마 나머지는 지난해에 계획하거나 기존에 실시해온 사업이다. 실질적으로 광주시는 단 한개의 코로나19 청년정책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 생애 최초 국민연금 지원사업은 김영록 전남지사의 핵심 청년 공약 가운데 하나다. 만 18세, 고교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가운데 국민연금 가입 희망자에게 최초 국민연금보험료 9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려 미래에 수령할 연금총액을 늘려주는 복지정책이다. 2019년부터 도내 청년 4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할 계획이었지만 해당 사업은 무산됐다. 복지 포퓰리즘 정책이 국민연금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전남도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업 예산은 4억500만원(도비·시군비)이다. 당시 정의당 전남도당은 “청년이 떠나는 전남에서 어렵게 전남을 지키는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청년 생애 최초 국민연금 지원’ 사업이 좌초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예산의 부활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후 국민연금 지원사업은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청년희망정책프로젝트 일환으로 부산시 공공부문 청년의무고용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라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은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신규 고용해야 한다. 오 전 시장은 청년의무고용 비율을 현 3%에서 5%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오 전 시장은 공약집에 해당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조달 방법으로 ‘별도 예산 발생 없음’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부산관광공사(지방공사)와 부산지방공단스포원(지방공단)은 2년 연속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제 미이행기관 명단에 올랐다.
그렇다면 시행 중인 청년지원정책은 청년들에게 정책 효능감을 주고 있을까. 외국계 항공사 승무원 이지연씨(가명·95년생)는 지난해 10월 해고됐다. 코로나19에 따른 정리해고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씨는 만 24세, 청년기본소득 지원대상으로 지난해 분기당 25만원씩 모두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받았다. 지원금은 식료품을 사는 데 썼다. 이씨는 ‘수혜’를 받았지만 정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해고’ 청년 가운데 혜택을 받은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원 대상 선정기준은 이해할 수 없었고, 사용처 제한을 둔 지역화폐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씨는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다양한데 지원방식은 일괄적”이라며 “그나마 이런 정책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효능감 떨어지는 청년정책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정부·지자체 추진 청년정책에 대한 1934 청년들의 인지 수준과 만족도 평가보고서(2018)’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34.9%만이 현재 정부·지자체에서 추진 중인 관련 청년정책의 내용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청년정책에 대해 만족한다는 비율은 13.0%에 그쳤다. 정작 청년들이 청년정책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청년들은 왜 청년정책에 대한 관심이 적을까. 지난해 한국지역개발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지방 청년정책을 통한 정부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분석’ 에 따르면 청년정책의 효능감이 낮은 이유는 당사자인 청년을 배제한 정책 의사결정과정에 있다. 청년정책에 있어 청년은 수동적인 시혜 대상일 뿐 주체가 아니다.
전국 243곳의 광역·기초 지자체 가운데 215곳에 청년기본조례가 제정됐다. 이 가운데 160개 지자체에는 청년위원회가 구성돼 있는데 청년위원회에 참여하는 청년비율은 40.6%에 그친다. 청년정책에 대한 청년들의 의사결정 권한이 높지 않다는 의미다.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형식적으로 조례를 만들고 청년정책위원회에 정책심의 권한을 줬지만 실제로는 자문 수준에 불과하다”며 “정책 효능감을 높이려면 당사자인 청년, 그리고 청년 정치인이 직접 정책의제를 발굴하고 공론장으로 끌고 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년 정치인이 설자리는 여전히 협소하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광역 20%, 기초 30%를 청년에게 할당할 것을 약속했지만 실제 선거에서 광역·기초 후보자 가운데 청년(만 45세 미만)은 16%에 불과했다. 당초 광역·기초 50% 청년 할당을 약속한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의 청년 후보자 비율은 광역 11%, 기초 9%에 불과했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특정 커뮤니티 여론에 따라 청년정책을 설계하다 보니 정책들이 파편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정치권에 진입해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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