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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만 불린 물류센터, 소방안전 '사각지대' - 한겨레

2016~2020년에만 물류창고 1800여곳 늘어
방화벽, 스프링클러 등 규정은 ‘제자리걸음’
‘빨리, 많이’ 치우쳐 안전대책 뒷전
“방재팀 제구실 하는지 당국이 점검해야”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20일 119소방대가 잔불을 끄고 있다. 이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20일 119소방대가 잔불을 끄고 있다. 이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7일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계기로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물류센터들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관리 점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수요가 폭증하면서 물류센터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있지만, 대부분이 ‘빠른 배송’과 ‘대형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화재 등 안전사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관련 제도와 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물류센터의 수는 ‘이커머스 붐’이 일어난 최근 수년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3일 국토교통부의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에서 신규 등록된 연면적(각 층 바닥면적의 합계) 1천㎡ 이상 물류창고는 732곳으로 2019년(342곳), 2018년(257곳)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현재 전국에 있는 물류창고 4625곳 중 약 40%인 1811곳이 2016~2020년 5년 새 새로 생겼다. 연면적 1만㎡가 넘는 대형 창고의 경우 지난해 1년 동안 20% 넘게 늘어나는 등 대형화 경향도 뚜렷하다. 일용품, 식품 등을 주문 당일이나 이튿날까지 배송하려는 속도전이 본격화하면서 업체들이 대도시 가까운 곳에 거대한 물류 허브를 잇달아 세운 결과다. 물류센터들이 ‘빨리, 많이’를 외치며 몸집을 불릴 동안 방재 대책과 규정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화재 시 불길이 실내 전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주는 방화벽 관련 규정이 대표적이다. 건축법 시행령 제57조는 실내 공간 1천㎡마다 방화구획을 편성해 방화셔터 등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지만, ‘내부설비의 구조상 방화벽으로 구획할 수 없는’ 창고시설에는 예외를 뒀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컨베이어벨트 등이 얽혀 있는 대형 물류센터 실내에 방화벽을 두면 사실상 창고가 제 기능을 못 할 것”이라고 특례규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덕평센터 화재 사례에서 보듯 방화시설의 부재는 불길이 초기에 제압되지 못한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덕평센터의 방화구획은 각각 최대 1만㎡ 넓이로 정해져 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창고나 공장은 주거용이 아닌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화재 확산을 고려하지 않은 구조로 지어진다”며 “이번 덕평센터 사고를 포함해 물류센터에서 한 번 불이 나면 전체가 전소되는 일이 잦은 건 배송상품 등 인화성 물질로 가득한 실내의 방화구획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류센터의 복잡한 내부 구조도 초기 진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대형 물류센터의 경우 10m 이상 높이의 랙(rack·선반)을 두고 수직으로 물건을 쌓아 올린다. 직원들이 높은 높이에서도 물건을 꺼낼 수 있도록 랙의 층마다 철제 구조물을 설치해 두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한 층이 여러 작은 층으로 세분화 돼 있다는 게 물류업계 직원들의 설명이다. 쿠팡 덕평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ㄱ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덕평센터는 적층(임시층)을 두고 그사이를 컨베이어벨트로 이어 놓아,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복잡한 구조”라며 “직원들도 길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니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선반식 건물인 물류센터에서는 화재 초기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더라도 선반 사이사이로 번지는 불길을 제압하기 힘들다”며 “불이 수직 방향으로 퍼질 때 수평 방향에서보다 20배 정도 확산 속도가 빠르다. 스프링클러를 선반마다 촘촘히 설치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물류센터의 구조적 취약성도 문제지만,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은 “‘속도’만을 앞세운 물류센터에 대형 화재는 예고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작업 방식과 시설관리 체계가 배송 속도를 높이는 데만 치중돼 있어 안전은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한 대형 냉장창고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ㄴ씨는 “학교 복도처럼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작은 창고들이 늘어선 구조였는데 중앙 복도에 상자나 택배물품들이 쌓여 있어, 평소에도 길이 막혀 맞은편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한켠에 비켜 기다리곤 했다”며 “불이 나면 위험할 것 같았지만 현장 감독들은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ㄷ씨는 “일용직들이 업무 중 상품을 훔쳐 도망갈 수 있다는 이유로 출입구를 한 곳만 제외하고 모두 폐쇄시킨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장의 안전 담당자가 예방조치와 초동대처를 제대로 했다면 이번 화재도 이렇게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물류센터의 방재팀이 화재 대응 역량을 갖추고 평소 직원들에 대한 방재 훈련 등을 하는지 점검해야 할 때”라고 짚었다. 천호성 장예지 강재구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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