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초 학내시위 전력을 이유로 불합격됐던 사법시험 피해자들은 2008년초 합격증을 받았으나, 행정고시 탈락자들은 아직도 원상회복을 못하고 있다. 행정고시 면접에서 부당하게 불합격 처분을 받았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왼쪽)과 백종섭 전 대전대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KB금융 사무실에서 명예회복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전두환 정권은 집권 초기 학생 시위 경력자를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면접에서 탈락시켰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07~2008년 이는 불법·부당한 조처였다는 결정을 내리고, 불합격 취소 처분을 권고했다. 법무부는 이에 사시 탈락자들을 즉각 합격시켰으나,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행시 탈락자들을 아직도 외면하고 있다. 행시 부당탈락자들인 윤종규, 백종섭씨를 지난달 여러 차례 만났다.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픈 일들을 바로잡고 새로 나가기 위해서는 부당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야죠. 진실화해위원회(2005.12.~2010.12.)에서 10여년 전에 이미 그렇게 권고를 했음에도 지금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있어 아쉽고 답답합니다.”(윤종규) “국가의 부당하고 위법한 행정처분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사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예야 그다음 문제죠.”(백종섭) 윤종규(65) 케이비(KB)금융지주 회장과 백종섭(65) 전 대전대 교수(이하 호칭 생략)는 조곤조곤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부당한 행정고시 탈락에 대한 구제조처를 강조했다. 이들이 당한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은 1980년과 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종섭은 1980년 12월에 치러진 행정고시(24회) 3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 전해까지만 해도 1, 2차 시험 합격자는 아주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면접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이해에는 2차 시험 합격자 208명 가운데 21명이 불합격했다. 80년 9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거수기 선거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의 집권 직후다. 두 번 면접을 볼 수 있는 당시 규정에 따라 이듬해인 81년 행정고시(25회) 3차 면접을 봤으나 백종섭 등 4명은 또다시 떨어졌다. “군 출신인 전두환 집권 이후 학생 시위 전력이 있는 사람은 행정고시나 사법시험에서 탈락시킨다는 얘기가 그때 파다했고, 당시 저의 면접관이었던 서울대 행정대학원 유아무개 교수님한테 저의 경우에 대해 직접 듣기도 했어요. 유 교수님이 고시를 관장했던 총무처(인사혁신처의 전신) 공무원에게 확인하고는 ‘자네는 시위 전력 때문에 안 됐다’고 말해줬죠.”(백종섭)
1981년 행정고시 1, 2차 시험에 합격했던 윤종규도 81년(25회)과 82년(26회) 3차 면접에서 잇따라 탈락했다. 이때 두 차례 연거푸 탈락한 사람은 윤종규가 유일했다. “제가 그때 1, 2차 필기시험 합계에서 차석을 했어요. 81년 행시 면접위원장이었던 중앙대 박아무개 교수가 이듬해 초 고시 관련 잡지사가 주관하는 좌담회에 참석해서 ‘차석 합격생이 굉장히 스마트하고 우수했는데 구하지를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죠. 물증은 없었으나 학내 시위 관련 때문이라는 심증은 확실했죠.”(윤종규)
학내 시위 경력을 이유로 1981년 행정고시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았던 윤종규 케이비(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케이비금융 사무실에서 원상회복 조처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981년과 82년 행정고시 면접 탈락자였던 윤종규 케이비(KB)금융지주 회장이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1982년 12월 당시 총무처 장관에게 보냈던 편지 사본. 김종철 선임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윤종규는 82년 12월 말 총무처 장관에게 “본인의 탈락 이유에 관한 공식적 통보는 받은 바 없으나 적어도 81년의 경우는 재학 시의 학원사태 주동과 관련된 것으로 본인은 믿고 있습니다. 저와 유사한 사례가 각종 고시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바 이러한 3차의 충성심 심사 기준(소위 ‘신원조회 반영’)에 따른 탈락은 크나큰 문제가 있습니다. … 보다 폭넓은 인재 등용을 통한 행정 발전을 이룩하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낮에는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성균관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윤종규는 1980년 상반기에 부정 편입학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당시 3사관학교 생도 등 군 위탁생들이 학칙 근거도 없이 여러 학과에 대거 편입해 학교에서 큰 이슈가 됐을 때였다. “3월 초에 수업에 들어갔더니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알고 보니 경영학과 야간부 정원(25명)보다 훨씬 많은 40명이 군 편입생이더군요. 반대 성명서를 쓰는 것을 도와주다가 비대위원장이 됐어요. 그때 수업 거부와 학내 시위를 했는데 10·26(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시해 사건) 이후 첫 대학가 시위였어요. 총장이 사과하고, 군인 편입생들의 학번을 별도로 관리하기로 하는 등 잘 마무리됐는데 5·17 비상계엄령이 확대된 뒤 수배돼 결국 그해 6월 한 달 동안 동대문경찰서에 억류됐어요. 학교에서도 근신 징계를 받았죠.”(윤종규) 백종섭은 서울대 사범대(사회교육과) 2학년이던 1978년 9월 유신헌법 반대 서울 시내 대학생 연합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시내로 진출하다가 노량진역 근처에서 붙잡혀 노량진경찰서에서 일주일 동안 조사를 받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25일간 구류 처분을 받아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이와 관련해 학교에서도 한 학기 유기정학을 당했다. “유신 반대 학생시위가 있으면 젊고 정의감이 높은 대학생으로서 시위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복학 후 행정고시를 준비하였어요.”(백종섭)
학내 시위 경력을 이유로 1980년 행정고시에서 불합격했던 백종섭 전 대전대 교수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케이비(KB)금융 사무실에서 명예 회복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이들의 이러한 시위 참가 이력은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등 정보기관에 고스란히 남았고, 이는 결국 국가시험의 최종 당락을 좌우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국가의 불법행위가 확인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에서였다. 백종섭과 같은 해에 두 번이나 면접에서 탈락했던 고 박문화(경북대 행정학과 76년 입학)의 동생인 박문석은 형의 행정고시 탈락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을 2006년 11월 진화위에 요청했다. 가족과 친구들에 따르면, 박문화는 1978~79년 교내 시위에 참가했다가 전경들에게 체포돼 대구 중부경찰서에 연행됐다가 풀려난 적이 있으며, 이 때문에 80년과 81년 말 행정고시 3차 면접에서 탈락하자 이를 비관해 82년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화위 조사에서 당시 전두환 정권 차원에서 학생 시위 전력자는 국가시험에서 탈락시키기로 한 방침이 정해져 실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총무처에 파견된 보안사령부(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전신) 소속의 4급 요원 박아무개가 ‘참고 첩보’로 작성한 “총무처 사법시험 응시자 중 신원특이자 처리에 부심”(1982년 9월6일)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문서는 “총무처에서는 80년도부터 사법시험 응시자들에 대해 시험 성적 외에도 국가관, 사명감, 충성심 등을 평가에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면접시험을 강화하는 한편 출신 학교로부터 개인의 자료를 제공받고 안기부에 1, 2차 시험 합격자 명단을 통보하여 재학 중 시국과 관련된 문제 행위자를 별도로 통보받아 합격 심사에 반영시키고 있는데, 81년도 제23회 사법시험의 경우 1, 2차 시험 합격자 중 재학 시 시국과 관련한 문제 학생 11명을 3차 면접시험에서 탈락시킨 바 있다”고 적시했다. 문서는 사법시험만 언급하고 있지만, 당시는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모두 총무처 장관이 관장하고 있었기에 행정고시도 동일한 방침이 적용됐다고 진화위는 판단했다.
학생 시위 경력자의 사법시험 면접 탈락에 관한 정보를 담았던 보안사의 당시 첩보 문건. 총무처는 당시 사법시험뿐 아니라 행정고시도 관장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증언들이 진화위 조사 때 여럿 나왔다.(이하 ‘제24·제25회 행정고등고시 면접탈락 사건’ 진화위 보고서) 당시 총무처 고시국장을 지낸 이아무개는 “80년 가을쯤 고시국 고시과장이 장관에게 결재를 맡으러 갔다가 ‘앞으로 행정고등고시로 공무원을 뽑을 때 국가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라, 학교 다닐 때 시국 데모를 한 사람들은 배제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 사실을 내게 보고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장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고시국에서 논의해서 구두시험(면접)에서 탈락시키기로 결정했으며, 24회 행정고시 2차 합격자 명단을 안기부에 고시국 계장이 가져가서 시위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전에 불합격자로 표시하여 명단을 가지고 왔다’고 진술했다. 당시 고시1과장을 지낸 하아무개도 진화위 조사에서 ‘장관의 그런 지시를 이 국장으로부터 전달받았으며, 24회와 25회 행정고시 2차 합격생에 대한 신원조회를 공안기관에서 받았는데 데모 경력이 있는 면접생에 대해서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총무처는 안기부의 신원조회를 토대로 면접위원들에게 “정부의 방침이기에 데모 관련자들은 국가관 등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25회 행정고시 면접위원을 했던 유아무개는 총무처의 요구를 확인한 뒤 “당시 군사정권이 들어선 그 시절에 누가 강력하게 반발할 수 있었겠느냐. 데모 학생 명단에 있는 학생을 직접 면접하면서 속으로 ‘너는 탈락할 것인데 참 안되었다’고 생각했다”고 진화위에서 진술했다. 25회 행정고시 면접위원 이아무개도 진화위에서 “총무처 고시과 직원이 시위 전력자 명단을 주면서 면접 볼 때 참고해 달라고 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진화위는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와 같은 위법한 불합격 처분은 직업선택권 및 공무담임권을 침해한 것이며, 불합리한 이유로 다른 응시자와 차별하여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고,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위법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정(2008년 11월)했다. 앞서 진화위는 시위 전력을 이유로 같은 시기에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두 번 탈락했던 6명(원래는 10명이었으나 4명은 그 뒤 재도전해 합격)에 대한 불합격 처분 취소 등을 권고(2007년 9월)했다. 정성진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를 수용해 2008년 1월 이들 6명에 대한 불합격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면접시험을 다시 거쳐 합격증을 수여했다.
학생 시위 이력과 관련해 1980년대 초 사법시험 면접에서 탈락했던 6명이 2008년 1월 정성진 당시 법무부 장관(가운데)의 직권 취소로 합격증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합격증을 받았던 당시 정진섭 국회의원(왼쪽 셋째)과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맨 오른쪽)도 함께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2009년 6월 “행정고등고시는 공무원 임용을 전제로 하는 시험으로 사실관계 및 위법성이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확정되어야 이를 전제로 불합격 처분 취소가 가능”하다며 “제3의 기관에서 사실관계 및 위법성 여부가 구체적으로 확정될 때 권고사항 처리를 검토할 예정”이라며 시정 조처를 거부했다. 사법시험 탈락자 구제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뀐 것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행시 탈락자들은 정부에 진화위 권고를 이행할 것을 다시 촉구하고 있다. 박문석은 2017년 11월 “다시 한번 눈물로 호소합니다. … 국가가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피해자들에 대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를 청와대에 보냈다. 또 백종섭은 현재 행정고시를 주관하는 부처인 인사혁신처에 지난 2월 진화위 권고 이행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지난 8월 회신문에서 “‘제3의 기관에서 사실관계 및 위법성 여부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실이 없는 등 다른 상황 변화가 없는 현재의 상태에서는 대단히 안타깝지만 적극적 조치를 취하기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여전히 이명박 정권 때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이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도 “(행시 탈락 사건은) 사법시험 탈락자 명단과 같은 객관적 입증자료가 없다”며 동일한 입장을 밝혔다.
인사혁신처가 백종섭 전 대전대 교수의 청원에 대해 지난 8월 보내온 회신문. 인사혁신처는 여전히 제3기관에 의한 사실관계 확정을 불합격 취소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부야말로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주는 데 가장 적임이 아닌가요. 진실화해위원회도 법에 따라 설립된 정부기관인데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3기관의 판정을 다시 받아오라는 얘기가 계속되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윤종규) “사시는 자격시험이고 행시는 공무원 임용시험으로 서로 달라 정부가 처리할 수 없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당시 사시 합격한 사법연수원생은 3급 상당 공무원 신분으로 연수를 수료하고 판사 또는 검사로 임용되었죠. 문재인 정부답게 대처했으면 좋겠어요.”(백종섭)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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