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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주로 등장했던 최재형의 허망한 몰락 - 한겨레

정치BAR_오연서의 러브레터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끝까지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올린다. 국민의힘 평당원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모으겠다.” 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2차 컷오프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소감입니다. 그가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7월15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부터 김기현 원내대표, 당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가 한데 모여 최 전 원장의 입당을 ‘격하게’ 환영했습니다. 이 대표는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던 모습들이 우리 국민에 큰 귀감이 됐고, 무엇보다도 앞으로도 최재형 전 원장께서 국가를 위해서 더 큰 일을 해주시기 위한 국민의 기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한껏 추어올렸습니다. 성대한 입당 환영식부터 당대표의 강한 지지까지, ‘정치 새내기’에게 쏟아진 역대급 스포트라이트였습니다. 하지만 석달도 지나지 않은 10월8일, 대선 경선후보 8명을 4명으로 압축하는 경선 2차 컷오프에 최 전 원장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한때 야권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정계에 등장한 최 전 원장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요.
‘플랜비(B)’ 급부상하며 화려하게 등장
최 전 원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7월15일은 ‘윤석열 엑스파일’이 야권을 발칵 뒤집어놓던 때였습니다. 6월 말부터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그의 가족에 대한 소문들을 정리해놓았다는 ‘엑스파일’이 구설에 오르면서, 야권에선 ‘플랜비(B)’를 언급하는 빈도가 잦아졌습니다. ‘윤석열 대안’으로 주목받았던 이가 최 전 원장입니다. 감사원장 시절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 타당성 감사에 나서며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점은 윤 전 총장의 이미지와 겹쳐졌고, 각종 미담 덕에 도덕성 리스크가 적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름에 대한 최 전 원장의 응답은 신속했습니다. 지난 6월28일 감사원장직에서 사퇴했고, 열흘 뒤인 7월8일 부친 빈소에 몰려든 취재진에게 “대한민국을 밝혀라. 소신껏 하라”는 선친의 유언을 공개하며 대선 출마를 시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7월15일 오전 10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30분간 비공개로 만난 뒤 “오늘 평당원으로 입당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입당 여부를 놓고 ‘간보기 한다’는 비판을 받던 윤 전 총장과는 확연히 다른 ‘광폭 행보’였습니다. 입당하자마자 국회의원회관을 돌며 의원들에게 인사를 다니고, 당 대변인들과 간담회를 여는 등 당원 스킨십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감사원장 중도사퇴로 정치적 중립성을 걷어찼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야당의 전폭적 지지를 업은 과감한 행보였습니다. 입당 직후인 지난 7월4주차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은 5.5%로, 격차가 크긴 하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27.5%)에 이어 보수 진영 후보 가운데 2위였습니다. 윤 전 총장 쪽 지지율을 흡수해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이 언제 두자리수에 진입할지가 야권의 관심사였습니다.
“공부를 더 하겠다”…‘정치초보’의 좌충우돌 행보
8월4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날, 최 전 원장의 주된 발언은 “공부를 더 하겠다” “준비된 답변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출마 선언식에서 한반도 위기 대책, 산업구조 개편 방안 등 굵직한 국정 이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대신 ‘앞으로 잘 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가면서 준비가 덜됐다는 인상을 각인시켰습니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주로 나온 질문은 “준비가 안 됐는데 왜 대선에 나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씌워진 ‘초보 정치인’ 이미지는 경선 기간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1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5차 토론회에서 자신이 했던 말 중 다시 주워담고 싶은 말로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꼽으며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최 전 원장의 ‘초보티’는 캠프 운영에서도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는 캠프 안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을 ‘교통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입장을 바꾸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습니다. 한 캠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누구 한명을 믿고 전적으로 맡기지도 않고, 후보 본인이 캠프 안팎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결정을 했다. 그러다 보니 결정이 중간에 자꾸 바뀌기도 하고, 캠프 인사도 계속해서 추가되는 등 관리가 잘 안 됐다”고 말했습니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르게 하겠다며 ‘최재형다움’을 강조했지만, 그의 행보에선 ‘최재형다움’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 보니 어떤 층을 공략해야 할지 전략도 없었다는 겁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전 총장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려면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60대 이상 등 국민의힘 핵심 지지기반을 공략했어야 했는데, 행보에서 그게 보이지 않았다. 캠프 내에선 중도 확장이냐, 보수냐를 두고 9월까지도 고민을 했다”며 “초반에 방향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느 쪽도 공략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캠프 구성 초기엔 김영우 전 의원, 조해진 의원 등 당내 개혁성향으로 분류됐던 인사들이 최 전 원장을 돕기로 하면서,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이 내놓은 공약들은 최저임금 인상 반대, 주 52시간 상한 원점검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기업 옥죄기 법’으로 규정하는 등의 ‘우향우’ 전략이었습니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한번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공약들이 모르는 사이 슬쩍 올라오는 것을 보며 의아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캠프 해체’ 초강수…이후엔 과도한 ‘우클릭’ 행보
최 전 원장은 지난 9월14일 밤, 갑작스레 캠프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경선 후보 11명 가운데 3명을 탈락시키는 1차 컷오프 발표 전날 밤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지지율 정체에 ‘자진 사퇴설’이 회자되고, 1차 컷오프 통과도 불안하다는 전망을 고려해 내린 결단으로 보입니다. 최소한의 실무진과 후보 중심의 선거운동을 하며 기성 정치와 차별화하고 ‘최재형다움’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강성보수 쪽으로 치달았습니다. 부의 대물림을 조장할 수 있는 상속세 폐지 공약을 내놨고,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는데도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며 낙태 반대 1인시위에 나섰습니다. 국민의힘 내 부산·경남 지지자들에게 호응을 받던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내놓으며 당내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지지율이 하락세를 그리자 반전에 급급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특히 ‘가덕신공항 재검토’ 발언은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 민심만 겨냥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습니다. 한때 ‘최재형 전도사’를 자처했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더는 최 후보에게 대한민국을 맡기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지지철회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캠프 안의 불화도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캠프 해체의 배경에는 토론과 논의 없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공약들로 인해 내부 갈등이 있었고, 이를 최 전 원장이 방치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전해졌습니다. 캠프 상황실장을 지냈던 김영우 전 국회의원은 “최재형다움의 실체가 무엇인가”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야권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한 최 전 원장의 대선 여정은 일단 막을 내렸습니다. 최 전 원장은 8일 “평당원으로 돌아가 정권교체에 힘을 모으겠다”고 했습니다. 최 전 원장의 정치 행보가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때는 진정한 ‘최재형다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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