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가명)이가 지난 6일 낮 경기도 파주시 아파트에서 젖병에 든 특수영양식을 먹고 있다. 발달장애와 자폐가 있는 가람이는 섭식장애가 있어 딱딱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액체로 된 음식을 먹는다. 파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어어(엄마), 어어어(주세요), 맘마.” 6살 남자아이 가람(가명)이가 엄마(52)를 찾는다. 가람이는 발달장애가 있어 말이 느리다. 아침 일찍부터 엄마 품에 안겨 4시간 병원 치료를 받고 오느라 배가 고팠나 보다. 엄마는 분주하다. 섭식장애도 있어 음식을 잘 씹지 못하는 가람이에게는 젖병을 물려주고, 집에서 홀로 오전 시간을 보낸 엄마의 엄마, 가람이의 외할머니(78) 상태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 마스크 끈으로 머리를 묶으면 어떡해. 내가 다시 묶어드릴게. 옷도 뒤집어 입었네. 지퍼랑 단추가 있는 쪽이 앞으로 와야 하는 거예요.” 치매가 부쩍 심해진 가람이 외할머니는 웃기만 한다. 가람이의
엄마는 “현관문만 열어 놓으면 엄마가 자꾸 밖을 나가서 길을 잃으시거든요. 가람이 병원을 가야 할 땐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문을 잠가두고 가요. 요즘엔 한밤중에도 자꾸 가람이를 업고 밖엘 나가려고 하세요. 아이 병원 데려가고 돌보려면 야간 아르바이트만 할 수 있는데, 엄마가 위태로워 보여서 잘 못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가람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왜소하다. 가람이의 키와 몸무게는 110㎝에 18㎏이다. 섭식장애 탓에 액체음료로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이만큼 커 준 게 참 기특하다. 세상 빛이 빨리 보고 싶었을까. 27주 만에 나온 아이에게 붙은 이름은 ‘극초미숙아’였다. 790g으로 태어난 아기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엄마 품이 아닌 신생아 집중치료실이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는 가장 작고 약한 아이의 자리가 맨 안쪽에 있어요. 가람이는 가장 안쪽에서 두번째 자리에 있더라고요. 그 작은 몸에 각종 호스에 의료기기가 붙어 있는 걸 보니 너무 미안했죠. 마치 아이가 ‘엄마, 저 너무 지쳤어요.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태어나자마자 뇌출혈이 오고 뇌수막염에 걸린 아이를 보니 엄마는 죄책감부터 들었다. 가람이는 연애 중에 생겼다. 가람이 아빠인 당시 남자친구는 임신 소식에 매몰차게 돌아섰다. 무책임하게 떠난 아빠 몫까지 다 해내겠다고 결심한 그에게 경제적 자립이 필요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가장 필요한 게 돈이라고 생각해서 닥치는 대로 액세서리, 옷가게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임신 4개월차, 새벽에 동대문으로 옷을 떼러 가던 길에 과로로 쓰러졌어요.” 그때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한 엄마의 사투가 시작됐다. 정상적이지 않은 위치에 태반이 붙어 있던데다 태반박리, 자궁파열까지 생겼다. 가람이를 구하려 값비싼 출산억제제를 맞기 위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임신 6개월차에 가람이가 세상에 나왔다. 당시 엄마가 가진 소원은 “무조건 살아 있어만 달라”는 것이었다. 작은 몸에서 자라난 병균이 새로운 병을 자꾸만 만들어냈다. 뇌수막염 때문에 독한 항생제를 쓰다 보니 신장결석과 수신증(신장 질환의 하나인 물콩팥증)이 생겼고, 발목에 찌르는 손가락 길이만 한 가는 주삿바늘을 감당할 수 없어 발목뼈가 부러지기까지 했다. 성인 손 한 뼘 크기의 가람이 등에는 혈관 조직이 뭉쳐 덩어리를 이룬 혈관종이 자라기도 했다. 엄마가 만난 의사들은 모두 ‘생존 확률이 낮다’거나 ‘치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만 되뇌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마음에 박혀 사라지지 않던 말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36개월까지가 재활의 골든타임이다. 그 시기만 버티면 된다.”
‘골든타임’ 끝 살아남은 아이…빚더미 오른 엄마
이른 출산으로 엄마 역시 몸이 성한 곳이 없었지만 ‘36개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돌이 될 때까지 가람이는 각종 수술을 받았고,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한 달 치료비만 약 600만원이 들었다. 엄마는 모유를 냉동해 집이 있는 경기도 파주에서 병원이 있는 서울 왕십리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달려 아이에게 갔다. 하지만 그사이 병원비로만 1억7천여만원이 쌓였다. 나이 든 어머니, 4번의 뇌출혈 수술을 받은 친오빠와 함께 살았던 그를 도와줄 곳은 거의 없었다. 신용카드 여러개로 각종 청구서를 돌려막았다. 방치해 둔 액세서리 가게에 내지 못한 월세는 보증금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10년 넘게 살았던 아파트를 담보로 제3금융권에서까지 대출을 받았지만 입원한 가람이를 돌봐야 했기에 일자리를 알아보는 건 엄두를 못 냈다. 그렇게 쌓인 빚과 각종 공과금 연체와 체납으로 현재는 주택과 예금이 모두 압류됐다. 엄마는 프리워크아웃(이자율 채무조정)을 신청했고, 10년간 한 달에 30만원씩 채무를 상환하는 조건으로 채무조정을 받았다. 한때 희망이던 액세서리 가게도 비워줄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끈질기게 버티자, 15개월여 만에 병원을 나온 가람이도 꿋꿋하게 버텼다. 그러나 발달장애 때문에 언어와 인지 능력이 3살 수준에 머무른 가람이는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예민하고 자주 불안감을 느낀다. 가위만 대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탓에 머리가 길어도 자르지 못하고 양 갈래로 묶고 다닌다. 엄마는 그런 가람이를 차가 쌩쌩 달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오가는 바깥세상에 잠시도 혼자 둘 수 없다. “아이가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해요. 주위에 차가 있으면 그쪽으로 휙 뛰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언젠가는 혼자 집 앞 편의점에라도 갈 수 있는 날이 오는 게 소원이에요. 원하는 게 있으면 밖에서 사올 수 있는 딱 그 정도만이라도….”
가람이가 집에서 엄마와 놀고 있다. 파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마는 가람이의 통원 치료로 낮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일주일에 3일은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병원에 가서 언어·특수인지·작업·감각통합·물리·음악·미술 치료를 받고, 이틀은 사설 치료센터에서 추가 치료를 받는다. 가람이에게 적절한 치료 프로그램을 찾아 엄마는 파주 집에서 매일같이 경기도 고양 일산과 의왕, 동탄에 있는 병원과 사설 치료센터를 찾는다. 치료비만 한 달에 400만원을 넘지만 정부 지원으로 받는 돈은 아동수당 10만원에 장애아동 바우처 12만원이 전부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고 싶었지만 압류된 집 때문에 조건에 맞지 않아 어렵다. 아이가 깨어 있는 낮엔 일을 할 수 없어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야간조,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터지자마자 물류센터 일을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5일까지도 해 봤는데, 몸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아르바이트) 대기자 명단엔 이름을 무조건 올려두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도 병행했어요. 물류센터에서 안 불러주면 마스크팩 공장으로 가고요. 밤 9시에 가서 아침 7시 정도까지 일을 하는 거죠.” 복지재단과 지인들의 십시일반으로 엄마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가람이 외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야간 아르바이트도 최근에는 쉽게 나서지 못한다. 외할머니는 2년 전만 해도 가람이의 육아를 도왔지만 치매 3등급 판정을 받으면서 혼자 몸을 가누는 것도 급속도로 어려워한다.
‘미안해’ 가람이 표현에…살아갈 힘을 얻는 엄마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가람이가 작은 손으로 엄마를 당겼다. 버튼을 누르면 뽀로로가 ‘사랑해’ ‘고마워’ 등의 말을 하는 장난감을 갖고 온 아이가 누른 버튼은 ‘미안해’였다. 엄마는 “아이가 말은 못 해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다 아는 것 같았어요. 가람이가 저한테 ‘미안해’란 표현을 하는데 그걸 보면서 ‘우리 아이에게 가능성이 있는데, 이렇게 놓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는 가람이로부터 살아가야 할 힘을 얻는다. 현재 엄마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압류된 집을 청산하고 네 식구가 살 집을 찾기 위한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루 평균 3시간을 자면서 병원과 일터, 집에서 고군분투했지만 엄마는 때때로 한계를 느낀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가람이를 보며 엄마는 희망을 찾는다. “제가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약하다 보니 저보다 빨리 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다 해도 나중에 가람이가 엄마를 떠올렸을 때, 봄 햇살 같은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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