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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32)법복 벗고 피고인과 증인으로 만난 두 악연…‘법원의 존재 이유’를 묻다 - 경향신문

2020.12.20 20:46 입력 2020.12.20 23: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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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왼쪽 사진)과 판사 출신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각각 피고인과 증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의원이 사법농단 재판에서 증언한 것은 의혹이 불거진 지 3년10개월 만에 처음이다. 법정에선 2017년 2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의혹을 받는 법원행정처 조치와 관련해 이 의원이 작성한 진술표를 놓고 공방이 오갔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왼쪽 사진)과 판사 출신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각각 피고인과 증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의원이 사법농단 재판에서 증언한 것은 의혹이 불거진 지 3년10개월 만에 처음이다. 법정에선 2017년 2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의혹을 받는 법원행정처 조치와 관련해 이 의원이 작성한 진술표를 놓고 공방이 오갔다. 연합뉴스

국제인권법연구회 놓고 충돌
3년10개월 만에 법정서 만나
이탄희의 ‘진술표’ 공개에
임종헌은 ‘경위서’로 맞서
사법농단 진실 놓고 공방

지난 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 중법정의 증인석에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42)이 앉았다. 이 의원은 판사이던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는 법원행정처 조치에 반발하고 사표를 냈다. 그는 사법농단이 세상에 알려지는 단초가 된 상징적 인물이다. 임 전 차장과 이 의원은 그 후 법복을 벗었고 두 사람은 이날 피고인과 증인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으로 법정에서 마주했다. 의혹이 불거진 지 3년10개월 만이다.

사법농단은 법원 조직 전체가 함께 반성해야 하는 사건일까, 개인의 욕심이 법원에 화를 부른 사건일 뿐일까. 사표를 낸 게 “제 개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던 이 의원은 이젠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사법농단을 계기로 법원이 직업윤리를 다시 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이 판사 시절 많이 말했다는 ‘법원은 판사들의 것’ ‘우리는 그 법원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에 이 의원은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법원은 국민의 것”이라고 했다.

임 전 차장과 공모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측은 사법농단의 성격을 임 전 차장 ‘개인의 욕심’에서 기인한 것으로 규정한다. 자신이 대법관이 될 수 있는 키를 갖고 있던 대법원장과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임 전 차장이 각종 부적절한 일을 벌였다는 취지다. 이 전 실장은 물론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들도 몰랐던, 임 전 차장만의 독자 행동이라고 했다.

■ 진술표에 빼곡히 적힌 2017년 2월

재판에선 이 의원이 사법농단에 대한 대법원의 1차 자체 조사 때 작성했다는 ‘진술표’가 공개됐다. 대법원장 인사권의 문제를 짚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기획할 때부터, 법원행정처로 인사발령난 뒤 연구회 와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대화한 날짜와 시간·장소, 상대방, 어떤 수단으로 대화했는지, 대화 내용이 상세히 담겨 있다. 이 의원은 경험한 사실을 아주 면밀하게 진술표에 적었다고 했다.

진술표에 의하면, 2017년 1월15일 이수진 당시 부장판사(현 민주당 의원)가 두 차례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는 내용은 이렇게 적혀 있다. “행정처 높은 분에게서 내게 전화가 왔다. 나보고 연구회에 전달하라는 취지인 것 같다. 학술대회를 대법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학술대회 안 했으면 한다.” 이수진 의원은 법정에 나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학술대회를 막으라고 했다”며 “(저는) 막으면 안 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
“임 전 차장 사욕이 화 불러”
법원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이 전 상임위원은 이탄희 의원에게도 전화해 학술대회를 철저히 법원 내부 행사로 진행하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진술표엔 나온다. 2017년 2월14일 대법원 사무실에선 이런 말을 했다고 돼 있다. “행정처는 정보를 취합하는 소스가 엄청나게 넓다. 연구회 모임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 내용도 다 알고 있다. 기조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파일들이 있다. (…)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고, 좋은 취지에서 한 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 ‘뒷조사 파일’과 관련해 이 전 상임위원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임 전 차장이 스스로 책임을 수긍한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들도 있다. 이 의원이 사표를 낸 뒤 전화 통화에서 법원행정처의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타깃으로 한 정책 결정이라고 들었다는 말을 하자, 임 전 차장이 ‘그 부분은 내 책임 50% 인정한다’고 답했다는 부분이다. 이 의원은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는 외부로부터 사법부의 존립을 수호한다. 그래서 결집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일부 정치적인 판사들이 오히려 행정처를 와해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설명했다고 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이 의원이 당시 격앙되고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상황을 다소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이라는 취지로 신문했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프레임일 뿐,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명단을 행정처에서 작성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전 상임위원의 말은 ‘지시’가 아니라 ‘부탁’이라며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질책이나 불이익을 받은 적도 없지 않느냐고 따졌다.

임 전 차장은 30분가량 직접 이 의원을 신문했다. 이 의원이 진술표를 작성했을 시기 자신도 나름의 ‘경위서’를 작성했다며 진술표와 경위서 내용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역시 당시 경험하거나 인식한 내용을 경위서로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경위서 내용을) 지금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엔 기억을 토대로 작성된 것임이 분명합니다. (…) 경위서엔 피고인이 증인에게 ‘법원행정처는 국회·행정부·언론 등 대외관계에서 법원 입장을 대변하고 기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기본 역할이기 때문에 법원행정처 전체 업무 중 연구회 관련 업무는 극히 미약하다, 증인이 직접 법원행정처에 부임해서 근무해보면 오해가 해소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기재돼 있는데 증인은 혹시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은 없나요?”(임 전 차장)

“없습니다. 그 당시 그렇게 차분하게 대화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이 의원)

“경위서엔 또 피고인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연구회가) 없어져도 그와 유사한 단체가 필연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없애는 과정에서 내부 반발 등이 심각할 텐데 어떻게 없애겠냐’ 이런 말을 했다고 돼 있는데 기억 안 나시나요?”

“오래돼서 구체적 기억은 없습니다.”

이 의원은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조치가 직권남용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당시 생각했다고 했다. “법적인 본질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의 정당성을 허위로 알리라는 지시는 불법적인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하지 않은 것입니다.”(이 의원)

대법원 법원전시관에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 조항이 전시돼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법원 법원전시관에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 조항이 전시돼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임종헌, 대법관 되려고 한 것 아니냐”

지난 3일엔 임 전 차장이 이민걸 전 실장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임 전 차장 자신도 재판을 받는 피고인으로,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증언을 거부할 게 예상됐다. 그럼에도 이 전 실장 측 민병훈 변호사는 임 전 차장에게 증언을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사법부 구성원의 자긍심과 명예’를 위해서라도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실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임 전 차장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거리 두기를 해왔다.

임 전 차장은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 전부에 대해 증언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증언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했다. 민 변호사는 그의 앞에서 ‘대법관’ 이야기를 꺼냈다. 임 전 차장이 자신이 대법관이 되는 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대법원장과 청와대가 좋아할 만한 일을 수행하고, 반대로 장애가 될 수 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원개혁 여론은 잘라내려 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관 0순위’로 불렸고, 2016년부터 양 전 대법원장 임기가 끝나는 2017년 9월까지는 대법관 3명이 바뀌는 시기였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후보추천위원회가 있지만 사실상 대법원장이 낙점하고 청와대가 선호하는 사람이 대법관 후보가 됐다.

“증인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서 대법원장으로부터 대법관으로 제청되기에 가장 좋은 보직에 있었고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걸림돌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으며 인사검증 과정을 책임지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는 상황에서 (문제점을) 검토한 것은 증인의 대법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민 변호사)

민 변호사의 신문을 듣던 임 전 차장은 증언의 막바지에 이르러 소회를 밝혔다. “최근 중남미 어느 국가에서 대통령을 역임한 가난한 노정객이 정계를 은퇴하면서 국민들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한 말을 제 상황에 빗대어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제가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내 마음의 정원에 남에 대한 증오를 심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이 타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큰 교훈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지난 10월 정계를 은퇴하면서 한 연설을 따온 것이다. 법적 책임을 면하려 자신을 대법관 자리에 욕심낸 사람으로 추궁한 이 전 실장 측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은 이탄희 의원을 신문하면서도 “진실공방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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