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틀 닦은 故최형섭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 업적 재평가

○불모지에 ‘과학한국’ 씨앗 뿌려

처음엔 서울 청계천의 어물시장 옆 사무실에서 초라하게 시작했다. 최 박사는 이 공간을 거점으로 해외 과학 기술자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걸고 인재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교수보다 3배 많은 봉급을 주고 의료보험까지 제공하자 지원자가 쇄도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가 아니라 기업에 필요한 연구를 해야 한다”며 엄격한 기준으로 50여 명을 선발해 초기 KIST를 꾸렸다.
그는 단위연구실별로 기초에서 응용까지 자유롭게 연구하되 결과는 기업과 연계시키는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정부의 지원을 받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캐나다의 국가연구위원회(NRC), 자국에 필요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는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의 장점을 모아 KIST에 적용했다. KIST는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성공적으로 출범했고, 과학기술인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개도국 귀감 된 KIST 모델…새로운 발전전략 필요
KIST처럼 선도적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연구를 중심으로 선진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는 모델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귀감이 됐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임재윤 서울대 연구원은 2017년 논문 ‘최형섭과 한국형 발전모델의 기원’에서 “최 박사의 과학기술정책론 작업은 이후 여러 국제기구 및 개발도상국에서 관심을 갖는 일종의 ‘한국형 발전모델’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KIST 모델은 인도네시아와 요르단, 태국 등에 적용되며 명성을 얻었고, 최근에는 한국-베트남과학기술연구원(VKIST) 설립으로도 이어졌다.
최 박사는 1971년 제2대 과기처 장관을 맡으면서 정부의 과학행정 및 정책 분야의 기틀도 다졌다. 대학의 기초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한국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설립도 주도했다. 대덕연구단지 설립을 이끌고 정보산업국을 설치하기도 했다.
한국의 과학기술은 최 박사가 활동하던 때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수준으로 발전했다.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는 세계 5위권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비는 2014년 이후 세계 1, 2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서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R&D 예산을 확보하고 있지만 운영이 관료화됐고, 분절적 단기적 산업지향적인 연구에만 치중하고 있다”라며 “사회적 효용을 추구하고 종합적인 R&D를 지향하며 연구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과학기술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October 30,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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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불모지였던 한국에 공학기술 씨앗 뿌리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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